두 해 전 할아버지 산소 벌초를 위해 아버지고향으로 내려갔었다. 내려간 김에 첫째 큰아버지 둘째 형 네 식구와 통영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형덕분에 알쓸신잡에 나왔던 닷지집도 가보고 (기대했던 것과 다른 비주얼에 잠시 실망했다.) 오랜만에 서먹했지만 가족(친척)의 정도 느꼈다.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아버지께 최근에 봤을 때 삼촌도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시더라.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렇게 가끔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런 형이 12월 마지막주에 유명을 달리했다.
나이가드니 친척간의 왕래는 경조사 때 빼고는 이제 거의 없다시피 하다. 조사라 함은 대부분이 아버지 항렬에서 나왔다. 그랬는데…
도착한 장례식장엔 둘째 형이 내가 본 것보다 더 크고 환하게 웃으며 있었다.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죽음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오래전 지금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먼저 맞이한 죽음은 할아버지였다. 구 남매 중에 막내인 아버지를 생각하면 할아버지 연세는 적지 않았다. 너무 옛날이라 어렴풋하지만 지금에도 기억나는 건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고 계시는 모습이다. (너무 오래전이라 확실하지는 않다.)
그다음은 고등학교 때 친구의 죽음, 중학교 선생님의 죽음, 친구 부모님의 죽음, 친척들의 죽음 등등
모든 죽음이 같은 크기의 상흔을 남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죽음은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잠시 떠난 이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떠났을때 남겨질 이들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