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를 하기로 했다.
일기도 앱으로 쓰다 보니 손글씨를 쓸 일이 별로 없더라. 그런데 지인이 얼마전 하던 필사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다면 필사를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어떤 책이 좋을까 싶어 고민하다 바가바드기타를 필사하는 모임이 있다 하여 덜컥 같이 하기로 했다.
사실 덜컥은 아니고 하루 고민하고 함께하기로 했다. 원래 같으면 고민하는데 긴긴 시간을 썼을 거다. 그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고 좋은 결과를 항상 담보하지는 않다는 거를 점점 느끼고 있다. 그래서 마음은 바로 응했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하루라는 시간을 두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노트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펜은 무엇으로 할지 젯밥에 더 관심을 쏟았다. 결국 펜은 집에서 뒹굴고 있던 몽블랑 만년필로 당첨!
이 만년필엔 재미난 일화가 있다. (아님 말고) 아마 고등학교? 혹은 중학교 때로 기억이 나는데 아버지가 만년필을 하나 선물해 주셨다. 당시에 만년필엔 관심도 없었고 몽블랑이 뭐 하는 브랜드인지도 몰랐다. 관리하는 법이나 사용법도 모르니 몇 번 써보지도 않고 연필꽂이 한 곳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0여 년이 흐른 뒤 만년필이라는 놈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 빠르게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기라 되려 아날로그정서가 그리운 사람들이 조금씩 나타날 때였다. (시기가 아니라 나만 그랬을지도?) 이런저런 브랜드를 알아보다 문득 아버지가 선물해 주셨던 만년필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니 몽블랑거다!! 가끔 볼펜 정리하다가 이 만년필 쓸모없는데 버릴까 싶었는데 그게 몽블랑 거였다. 세상에 버렸으면 진짜 어쩔 뻔. 십년감수라는 표현이 이럴 때 쓰인다. 근데 그때도 워낙에 오래 사용을 안 해놔서 잉크는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그리고 길이 잘못 들어서 그런지 청소한 뒤에도 필기감이 영 이상했었다.
이번에 생각난 김에 다시 청소도 하고 잉크카트리지를 갈아 끼우고 써보니 어라!? 대박. 완전 잘 나오더라. 서걱서걱 거리는 소리는 아무것도 아닌 소리인듯한데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지금 빨리 필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잉크가 마르면 안 되는데 하면서 빈종이에 몇 글자 써보기도 하고, 만년필 쓰기에 적당한 노트도 찾다 찾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사실 이렇게 보면 행복은 별게 아니다. 행복을 바라면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불행해진다고 하는데 그냥 이렇게 일상에 찾아오는 행복을 잘 맞이하고 잘 보내주면 되지 않을까 싶다. 행복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왔을 때 거부하라는 것도 아닐 거다. 단지 집착하지 말라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야기묶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떠오르는 생각들 (0) | 2024.01.26 |
---|---|
떠나는 사람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 (0) | 2024.01.25 |
요즘 고민하는 것 (0) | 2024.01.19 |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끄적끄적 (0) | 2024.01.16 |
그러고 산다. (0) | 2024.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