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책 이야기이지만 책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

khwan 2024. 1. 10. 12:00

20대에 시인의 책을 읽었다.
그의 시보다는 에세이가 더 눈에 띄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항상 내 마음 한 곳은 허기졌다. 그 허기가 무엇인지 모를 때 시인의 책이 내게 다가왔다. 인도여행기였던 책의 내용은 가본 적 없는 내가 인도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 시기에 한창 인도여행붐이 일 때였다. 관련 서적과 에세이가 서점에 가득찼으며 연관된 카페도 활성화되던 때였다. 막연하게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있던 때 친동생의 제안으로 군전역 후 동생과 함께 인도로 떠났다. 한 달간의 여행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은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흐릿해지기는 했지만…
 

그렇게 떠난 인도에는 작가가 말한 인도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났다. 그 화로 같이 간 동생과 싸우고서는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고, 뛰쳐나간 거리에서(밤이었다.) 무서워서 한 시간도 넘기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십 분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나는 진정한 여행을 했다. 그게 꼭 인도가 아니어도 됐다는 걸 지금의 나는 안다. 누군가가 이야기한 여행이 아니라 나만의 여행. 경험하고 느끼는 여행. 계획과 어긋나는 여행이 나를 계속 깨워줬다.
 

그렇다 항상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신작을 선물 받았다. 들어가는 글을 읽고서는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짜증 내던 나, 작가에게 사기꾼이라 생각했던 나(아마도 그랬을 거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나.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작가의 글에 녹아있었다. 그래서 흠칫 놀라기도 했다. 그의 그때와 지금이 다르듯 나의 그때와 지금이 달랐다. 그의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듯 나는 여전히 그때와 다르지 않다.
 

실수투성이에 넓게 마음을 써야지 하면서 여전히 아니 어쩜 점점 더 좁아지는 마음, 겉으로는 인자한 척 꾸미지만 속으로는 곯고 있는 나,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나. 
 
 
그의 책이 좋은 이유는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깨어나게 만들어준다. 
 
 
삶은 책 속에 있지 않다. 하지만 책은 진정한 삶을 살게 만들어준다. 꼭 책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요가도 마찬가지고 운동도 마찬가지고 명상도 마찬가지이다. 삶을 잘살고 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 나는 삶을 살고 싶어 책을 읽고 요가를 하고 운동을 한다. 내게 일어나는 장애를 극복하고자, 혹은 그 장애를 계속 끌어안고 살아가고 싶지 않아서. 
 
 
세상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의 이야기다. 그러다 가끔 나의 이야기와 공명하는 이야기를 만나면 같은 주파수를 내며 서로 공명한다. 그 공명이 위안을 준다. 결국 내가 위안을 받는 건 사람이고 타인이고 이야기다. 
 
 
오랜만에 이야기를 들고 와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로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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